면역은 역을 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옛날 전염병이 인류의 가장 큰 적이던 시절, 전염병에 의해 형제자매와 동네 사람들을 모두 잃는 경우가 허다했던 사람들에게 전염병을 피해 살아남는다는 것은 천운과도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전염병을 피해 살아남는 것이 면역이다.
앞에서 말한 면역은 주로 외부침입자에 의한 인체의 방어를 말한다. 사람은 환경의 일부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은 여러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햇빛(태양에너지)를 원료로 식물이 살고 있고 이 식물을 먹이로 여러 초식동물들이 살고 있고, 초식동물을 먹이로 하는 육식동물들이 살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 모두 존재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생태계가 있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생태계가 또 하나 존재한다. 바로 미생물들의 세계이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거의 어디에나 존재한다. 펄펄끓는 용암주변에도 존재하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극지방에도 존재한다. 당연히 사람의 몸에도 존재한다. 사람의 피부와 장속에 기관지속에 입속에도 존재한다. 사람은 이 미생물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사람과 공존하는 대개의 미생물들은 유산균에 속한다. 유산을 분비하여 피부를 혹은 장내를 약산성으로 유지하고 잡균들이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균들이 체내로 들어오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이러한 균들은 모두 체외 그러니까 피부나 점막의 바깥쪽에 살면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데 이들이 이 1차방어막을 뚫고 체내로 들어오면 우리 몸은 경보를 울리고 면역체계가 발동되고 이들을 없애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다. 이 때 동원되는 군대가 바로 면역세포들이다.
피부의 랑게르한스세포, 간의 쿠퍼세포, 비장의 대식세포와 과립구, NK세포등이 일차적으로 비특이적 반응(무차별적인 공격)을 보인다. 여기에 T세포와 B세포가 가세하면서 항체를 만들어내거나 감염된 세포들을 파괴한다. 이 싸움에서 지게 되면 패혈증으로 사망하거나 또는 지루한 염증과 치유의 공방전으로 만성병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면 치유가 되고 또 면역기억에 의해 두 번째 싸움은 아주 쉽게 이길 수 있게 된다.
면역의 두 번째 기능은 자기감시기능이다. 면역세포들은 혈액을 타고 조직을 지나 림프액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순찰을 끊임없이 하면서 고장난 세포나 감염된 세포를 찾아낸다. 사람의 몸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죽는 그날까지 계속 분열한다. 어제의 피부가 오늘의 피부가 아니다. 각각의 세포들은 수명이 있고 수명을 다한 세포는 ‘세포자연사’라는 과정을 거쳐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가 줄기세포에서 자라난다. 피부는 2주일 위장세포는 3일 대장세포는 7일 적혈구는 120일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분열하다보면 우리의 세포도 실수를 한다. DNA복제과정에서 미스프린트가 생긴다. 활성산소의 공격이나 노화에 의해 혹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DNA는 공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면역세포들은 고장난 세포들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고장난 세포들을 파괴한다. 누구나 하루에 몇 개씩의 암세포는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암세포들이 암이라는 질병을 이룰만큼 자라지 못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 면역세포들의 능력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들은 한 가지 표식을 가지고 있다. 바로 ‘나’라는 명찰(MHC)이다. 이 명찰을 달고 있는 세포는 아군이다. 하지만 이 명찰이 오염되었거나 다른 글이 쓰여 있으면 면역세포는 가차없이 그 세포를 파괴한다. 그런데 면역세포들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멀쩡한 명찰을 달고 있는 내 세포를 공격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한다.
암은 주로 반복적으로 손상이 일어나는 곳에 발생한다. 맵고 짠 음식에 의해 계속 공격을 받은 위장세포, 담배연기에 찌들은 폐세포, 알콜을 분해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간세포, 대변(똥)이라는 유독물질에 매일 노출되는 대장세포가 분열과 세포사를 거듭하다 과열되면 암세포가 자란다.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은 세포의 반란이다. 영원이 살고 싶은 세포의 바램은 성장호르몬을 무한정 분비하고 혈관을 만들어 영양분을 갈취하고 무한분열모드로 들어간다. 이것이 암세포의 실체이다. 이러한 암세포들은 면역세포의 자기감시기능을 피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아예 명찰을 달지 않는 방법이다.
우리가 보통 면역이라하면 주로 외부침입에 대항해 싸우는 정도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면역의 기능에는 외부침입에 대항하는 것에 못지않은 중요한 자기 감시 기능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면역은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좋지 않다. 적절한 정도의 면역이라야만 건강을 보장해준다는 것도 잊지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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