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여성을 진찰하기 위해-청진기 1816년, 35세의 르네 라엔넥 의사는 파리의 넥커병원에서 심장에 이상이 있는 젊은 여성 환자를 진찰하고 있었다. 환자가 상당히 뚱뚱한 편이었기 때문에 타진과 촉진을 시행하였으나 진단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청진을 하기 위해 환자의 가슴에 귀를 직접 대고 심음을 들으려다 환자가 젊은 여성이라 망설였다.
이 때 문득 '소리는 물체를 타고 전달 될수 있으므로 직접 귀를 대지 않고도 청진이 가능할 것' 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라엔넥은 그 자리에서 종이를 몇장 겹쳐서 원통형으로 말아 한쪽 끝은 환자의 가슴에, 다른 쪽 끝은 자신의 귀에 대어보았다. 심음이 분명하게 들렸다. 이것이 유명한 청진기 발명에 얽힌 이야기이다.
라엔넥은 그날 이후 각종 재료로 신체장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데 열중하였다. 여러 번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것은 길이 약 30센티미터, 직경 약4센티미터의 나무로 된 원통의 중앙부위에 구멍을 뚫은 실린더 혹은 스테토스코프(Stethoscope)라고 불린 기구였다.
라엔넥은 1819년에 청진기를 사용한 흉부질환의 진단법에 관한 논문인 [간첩청진법]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논문에서 진맥과 같은, 옛날부터 사용되어온 진단법에 대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런 방법들이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은 시행하기가 간단하고, 의사나 환자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지 않으며 그 해석 방법이 무수히 많아서 아무리 지식이 없는 의사라도 적당히 병명을 둘러댈 수 있는 진단법들 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우엔브루거의 타진법에 대해서도 '그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청진법과 같이 사용할 경우에는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우엔브루거의 논문은 타진이라는 새로운 진단방법을 소개하는 95페이지짜리 책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928페이지에 이르는 라엔넥의 논문은 청진을 시행함으로써 새롭게 알 수 있는 각종 질병의 증상에서부터 질병부위의 해부학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점이 크게 달랐다. 이것은 콜비사르의 제자로 프랑스 임상의학파의 총아였던 라엔넥이 흉부질환의 임상과 해부병리 양쪽 모두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논문은 '생전에 청진기에 의해 예견되었던 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200례가 넘는 폐결핵환자에서 사후의 부검을 시행한 결과, 공동성호흡음(청진기를 통해 환자의 호흡음이 가깝고 크게 들리는 현상)이 확실히 존재했던 부위에 궤양성 공동이 없었던 경우는 단 한명도 없었다.'라는 식으로 생전의 증상과 사후의 해부학적 변화를 명확히 연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청진법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의사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수년에 걸쳐 유럽 곳곳의 병원에서는 이 새로운 진단법의 도입과 관련한 논쟁이 일었다. 간혹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시험하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1820년대 말의 런던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는 청진법에 관한 공개 실험이 시행되었다.
어느 의사가 청진법을 사용하는 제임스 호프라는 의사에게 누가 더 진단을 잘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도전한 것이었다. 두의사는 각각 자신의 수법을 사용하여 환자를 진단하였고, 환자가 사망한 후 해부를 시행한 결과 청진기를 사용한 호프박사의 진단이 정확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시기에 활약하였던 프랑스 최고의 생리학자 마장디도 청진법에 대한 의사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지름이 서로 다른 관에 물을 흘려보낼때 나는 음과 체내에서 들리는 음을 비교하는 실험으로 신체의 기관이 내는 소리를 물리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밝혔다.
청진법이 의사의 감각이나 주관에 좌우되지 않는 과학적방법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자 청진법을 반대했던 의사들도 점차 그 진단적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의학은 바야흐로 환자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진단을 내리던 시대에서 의사가 환자를 '검사'한 후 진단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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