汚月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초여름 더위에 멱을 잡혔습니다
봄 내내 붙잡고 있던 겨울도 채 보내지 못했는데 이것 참 큰일입니다
전기장판 눈금은 한겨울에 그러했듯 언제나처럼 미온인걸요

 참 이상하죠
사월이 끝난 지 오래인데 일어나보니 베갯잇에 잔인함이 조금 묻어 있었습니다
마음 줄 어린이도 어버이도 스승도 모두 어딘가로 달아나버렸지만
외로움은 없습니다 그리움도 없습니다
그 수많은 ‘움’들 중 오직 두려움만이 저의 충직한 종자입니다

 
올봄은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좀처럼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언어가 간섭하기 어려운 이 결여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온갖 단어를 끼워 넣어봐도 마땅히 맞는 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천한 이 감정은 사전에 실릴 자격조차 없었던가 봅니다

백화점 앞 노상에서 한참을 서성였지만 누구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더군요
덕분에 여름옷의 가격표를 실컷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갈 곳 잃은 눈빛이 누군가의 눈치와 몇 번이고 부딪쳤지만
두 손이 텅 빈 사람의 몸뚱이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부자연스러운 끝이 무엇인지 그 탐구욕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오월은 그것을 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모든 것들은 뜨겁게 타오를 준비를 마치고 뒤돌아보지 않을 테지요
저는 제멋대로 멈춰선 삶을 단죄받고 싶어지는 기분입니다

묻습니다

이 계절은 어떻게 닦아내야 새것처럼 빛날까요
어떻게 헤매야 모두가 사는 오월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청춘은 언제까지 세계를 설득해 줄까요
펜대는 언제쯤 넋두리를 멈출 수 있을까요

어제는 길에서 풀꽃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아도,
예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