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발생률 외에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대망의(?) 1위를 차지한 분야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남성 흡연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흡연자가 ‘천대’받는 나라도 드물 듯하다. 최근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L백화점은 흡연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도핑테스트까지 불사했다. K그룹은 신입 사원들에게 금연 서약서를 받아내고야 말았다(회사 측은 서류 미구비 시 입사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직원 ‘압박용’ 금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많다. 국내 대기업 CEO 10명 중 8명이 금연에 성공한 ‘흡연자 출신’이라는 조사도 있다. 무엇보다 금연 빌딩은 점점 늘어가고 흡연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물론 담배를 끊으라는 주위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새해의 첫 번째 목표로 금연을 꼽는다. 금연을 하겠다며 담배를 꺾어버리기도 하고, 금연 보조 식품이나 약품을 써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흡연자들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일을 몇 해째 반복하고 있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흡연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니코틴 의존증’이라는 질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뇌는 저절로 ‘딱 한 개비만 피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뇌 과학 측면에서 볼 때 니코틴 의존증은 흡연을 반복 학습했기 때문에 생긴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체내에 들어가고 쾌감 행동 시스템이 작동해 ‘니코틴은 좋은 것’이라고 뇌가 학습하는 것이다. 흡연은 쾌감을 동반한 반복 행동이라 끊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무작정 금연하기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새로운 행동의 ‘뇌 네트워크(Brain Network)’를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이미 구축된 행동 네트워크를 파괴하지 말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금연을 시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담배 피우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 피우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노력하라. 새해 금연 결심을 또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으려면 말이다.

담배를 끊기 전에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할 네 가지가 있다. 이미 뇌가 학습한 ‘흡연 예찬 공식’을 버리는 것이다. 첫째, 담배는 기호 식품이라는 생각이다. 장담컨대 그렇지 않다. 담배는 단연코 마약이다. 니코틴은 코카인이나 헤로인과 다를 바 없는 중독성 물질이다. 니코틴은 뇌에 작용해 탐닉성을 가진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배출한다. 편안해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담배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그렇다. 문제는 우리 신체가 약물에 대해 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계속 복용량을 늘려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담배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면 흡연량을 계속 늘려야만 할 것이다. 셋째, ‘나는 언제라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나는 또다시 담배 중독자가 될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같다. 담배는 다른 어떤 약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담배 연기는 들이마신 순간부터 폐와 혈관을 거쳐 7∼9초면 뇌에 전달되고, 1분 내에 쾌감을 느낀다. 헤로인을 주사로 맞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다. 이때 뇌는 과거에 담배를 피운 기억을 재빨리 되살려 신체를 아주 간단하게 흡연 시스템으로 바꾼다. 넷째, 흡연을 하면 살이 빠진다는 생각이다. 체내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는 니코틴이 혈액으로 이동해 일시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지방은 소모되지 않고 복부에 재축적된다. 따라서 동맥경화나 당뇨병 같은 성인병에 걸릴 확률만 높아질 뿐이다.

흔히 ‘시작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다. 금연이 그렇다. 금연은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다. 아니, 결심하기까지가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이제 금연을 시작하면 ‘담배와는 영영 마지막’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닐까. 물론 그들이 모두 금연에 성공하지는 않는다. ‘금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우선 지금 당장 금연을 시작하되 ‘영원한 금연’을 선언하지 말고 ‘하루 금연’을 실천해보자. 아무리 애연가, 끽연가라고 하더라도 하루 금연은 해볼 만하다. 불과 24시간 금연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우선 호흡과 몸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하루 금연이 가능하다는 것은 ‘영원한 금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니코틴 중독의 정도에 따라 하루 금연도 매우 힘들 수 있다. 비록 ‘라이트 스모커’라고 하더라도 하루 중 수십 번의 흡연 욕구에 시달리게 마련.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담배라는 말만 들어도 한 모금에 대한 간절함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찬다. 하루 금연은 금연 성공의 첫 번째 관문이다. 하루 금연을 성공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담배의 폐해에 대한 책을 읽거나 동영상을 골라 보고, 담배를 대신할 사탕·물·니코틴 껌 등 어느 것이 자신에게 효과적인지도 점검해볼 수 있다.

하루 금연에 성공했다면 이제 일주일에 이틀 금연으로 시간을 늘려보자. 하루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담배 한 개비 정도를 피우고, 다시 하루 금연으로 돌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금연 시간을 48시간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즉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금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가족에게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또 ‘퇴근 후 담배 피우지 않기’라는 생활 수칙을 자연스럽게 병행할 수도 있다. 이 단계가 되면 월요일 아침, 회사에서 피우는 첫 담배가 주는 느낌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원래 담배는 그다지 유쾌한 물건이 아니다.

일주일에 이틀 금연하기를 두 번 정도 성공하면 3단계에 도전한다. 일주일간 금연하는 것이다. 하루 금연, 이틀 금연에 성공했으니 하루 금연을 7회, 이틀 금연을 3~4회 되풀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토요일부터 다음 일요일까지 ‘9일 금연’이 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 단계가 ‘하루 금연’ 다음으로 힘들다. 온갖 트리거(흡연 욕구를 부추기는 자극들)에도 단련되어야 한다. 혹시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이 정도만 되어도 흡연자들은 자신이 담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들이 상당 부분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며칠 만에 다시 담배를 피워도 ‘담배 맛이 정말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처럼 담배 연기는 결국 매캐하고 기침을 유발하는 연기일 뿐이다. 그런 연기를 들이마시고도 기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 해로운 것을 막아내는 메커니즘에 고장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주일 금연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다면, 당황하지 말고 다시 금연을 시작해야 한다. 한 모금이 다시 한 모금으로, 한 개비로 늘어나다 보면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에 맥없이 굴복한다. 금연을 결심한 사람은 흡연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유혹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일주일 금연에 성공하면, 그다음은 3주일 금연한다. 3주일 금연하면 신체적·생리적 금단현상은 거의 없어진다. 실제로 3주일 금연에 성공하는 것은 일주일 금연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2주 차부터 심리적 금단현상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다. 흡연 충동이 발동하여 딱 한 번만이라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사탕, 물, 자일리톨 껌 등이 도움이 된다. 허브 관련 식품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자일리톨은 단맛은 강하지만 몸에서 소화·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칼로리 과다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단, 휘산 작용을 해 목 안을 상쾌하게 만드는 은단은 담배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금연 보조제로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단현상에는 은단보다 박하 사탕이 더 탁월하다는 의미다.
 

3주 금연에 성공하면 4주 차부터 금연은 심리전으로 바뀐다. 느닷없는 흡연 욕구와의 싸움이다. 이 시기의 트리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화장실, 식사 후, 아침 기상 후, 술자리, 회의 자리 등의 ‘생활 습관 트리거’와 담배에 대한 이야기나 담배 피우는 장면, 담배를 권하는 사람, 담배 연기나 냄새 등의 ‘외부 트리거’다. 흡연과 금연은 결국 생활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생활 습관 트리거에 대해서는 생활 습관을 바꾸어 대항해야 한다. 식사 후 흡연 욕구는 금연 시도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 중 하나. 하지만 식사 후 흡연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눈뜨자마자 찾는 담배보다 더 해롭다. 코와 기관지는 매운 연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면 장은 뒤틀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식사 후 곧바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조영제를 마시게 한 후 엑스레이를 촬영하면, 위액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식도 아랫부분이 위산에 침식된다. 식도 아랫부분이 염산으로 화상을 입으면 명치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음주에 따르는 흡연도 비슷하다. 식사·음주 후의 흡연 욕구는 녹차를 마시거나 가벼운 산보를 하는 등 생활 습관으로 극복할 수 있다. 외부 트리거들에 대해서는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대체로 금연 3개월이 지나면 외부 트리거에 대해 저항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외부 트리거는 금연 초기 때 외에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는 말이다. 금연 1백 일에 성공했다면 당신의 승리를 자축하라. 이제 삶을 풍요롭게 즐기는 일만 남았다.